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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회고

[글또] 삶의 지도

by soro.k 2025. 2. 15.

 

삶의 지도

글또를 처음 지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삶의 지도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나도 8기에 처음 지원하면서 약 1000자의 줄글 형태로 내 지난 삶을 시간대 별로 정리했었다. 글또 OT에서 성윤님이 스프레드시트에 연도 별로 일어난 주요 사건들과 그 사건들로 어떤 영향을 받았나 정리한 걸 보면서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삶의 지도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정리하며, 주요 사건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돌아본다. 이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설계하는 계기로 삼는다.

 

 

그렇게 2023년 1월에 쓰인 나의 첫 삶의 지도는 시간대 별로 잘 정리한 듯 보이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빠져있다. 술자리에서나 "우리 그때 그랬었지." 하고, 자기소개서에나 "대학생 시절에" 하며 단편적으로 돌아보던 내 삶을 갑자기 돌아보려니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글또의 마지막, 10기를 끝내기 전에 다시 한번 삶의 지도를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삶의 지도로 시작해 또 다른 삶의 지도로 마무리 지어간다니! 벌써 괜히 뭉클해진다.

 

 

Connecting the dots

삶의 지도를 작성하려고 보면 너무나도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연설이 떠오른다. 이 연설을 통해 스티브 잡스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지금 선택하는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과거의 경험과 선택들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점들은 미리 연결할 수 없어요.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비로소 연결된 걸 알 수 있죠. 그래서 언젠가는 모든 것이 이어질 거라고 믿어야 해요. 그게 직감이든, 운명이든, 삶이든, 혹은 카르마든 말이에요. 나는 늘 그렇게 믿어왔고, 그 믿음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어요.

<202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 축하 연설>, 스티브 잡스

 

 

요즘 내가 읽는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 속의 주요 인물들은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해내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실패하기도 하면서 여러 경험을 했다. 퇴사 후 같이 회사를 꾸려가며 여러 시도들을 하는데 이때 과거의 그 실패했던 경험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게 하고 또 성장의 발판이 되는 걸 몸소 느끼면서 앞으로 더 어떤 것들이 이어질지를 궁금해하는 구절이다.

궁금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였던 오만 가지 실패들 중에 무엇이 언제 어떻게 바뀌어서 튀어나올지. 뭐가 됐든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어이없는 모양새일 것이다. 

<프리워커스(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모빌스그룹

 

 

과거의 어떤 점들이 이어져 지금의 내가 됐을까? 다시 나만의 방식을 더해 지도를 그려보려고 한다.

 

 

챕터 1. 부끄러움은 사치일 뿐

핵심 단어
워십 안무 지도 | 중창 동아리

영향
- 용기를 내야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다.
- 나는 나를 드러내며 다른 사람을 도우는 것을 통해 자긍심과 성취감, 행복함을 느낀다.

 

무용 시간에 워십 댄스를 가르치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오면서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탓에 외로운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심하고 입을 떼기 어려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무용 시간에 수행 평가를 위해 워십 안무를 가르쳐 줄 친구를 뽑겠다고 했다. 난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소심하면 소심했지, 춤출 기회를 놓칠쏘냐! 물론, 첫 시간에 "그렇게 목소리가 작아서 얘네들을 어떻게 가르칠래?" 하고 혼이 났지만 바로 목소리를 높여 친구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수행 평가에 성적을 매기던 날, 그렇게 나를 혼내던 무용 선생님이 내 안무에 대해 "거봐, 다르지?" 하는 소리에 내 마음은 사르르 녹았다. 그래, 용기 내길 잘했다.

 

집요함으로 기회를 얻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바로 '중창'이다. 점심시간마다 음악실을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열심히 노래를 불렀더랬다. 이때의 내가 어땠는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중창 동아리 단원을 모집할 때 오디션을 봤는데 "교회를 다니고 있냐"는 음악 선생님의 질문에 "다니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가 반주자 선배의 비웃음을 샀다. 교회도 안 다니면서 무슨 미션 스쿨 중창 동아리에 들어온다는 거냐고 생각했던 까닭이겠다. 그리고 보기 좋게 오디션에 떨어졌는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개미 소리만 하게 부르는 애도 붙는데, 왜 내가 떨어졌는지 억울하기만 했다. 당돌하게 음악실에 찾아가 선생님에게 "제가 떨어진 이유가 교회를 안 다녀서인가요? 모집 포스터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요?" 하고 물었고, 오디션에 붙은 친구에게는 선배들에게 내가 떨어진 이유를 물어봐 달라고 했다. 그들에게 나의 첫인상이 어떠했을지는 불 보듯이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구사일생으로 추가 오디션 기회를 얻었고, 결국 합격했다. 힘들게 얻은 기회인 만큼 단 한 번의 이탈 없이 상까지 야무지게 타오며 무사히 3년의 동아리 활동을 마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눈살 찌푸렸겠지만, 행동함으로써 기회를 얻은 것의 소중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챕터 2. 소신껏 살다 보면

핵심 단어
학생회 | 봉사 동아리 | 멘토링 | 실습 조교

영향
- 단체 생활에서 리더와 팔로워 모두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불합리한 것은 참지 못하는 나,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 완벽하지 않은 완벽주의자가 되다.

 

리더도, 팔로워도, 결국 나였다

1학년 - 봉사 동아리 부회장
2학년 - 봉사 동아리 회장, 학생회 서기
3학년 - 봉사 동아리 회장, 학생회 3학년장
4학년 - 멘토링, 실습 조교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첫 시작은 외톨이였지만 나는 4년 내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며 학교생활에 진심을 다했다.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열심히 이끄는 리더로, 그 외의 영역에서는 때로는 무한정 따르고 때로는 잘못된 길이라면 거침없이 막아설 줄 아는 팔로워가 되었다. 교수와 학생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며 모두가 하기 싫은 일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그렇다, 바른 말 안 하고 못 배기는 이 대쪽 같은 성격이 어딜 가겠나? 학생회 공금을 개인적인 뒤풀이에 쓰려는 선배들에게 카드 안 주고 버티기, 선배들이 쪽 찐 머리를 해줬다며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해주려는 동기들 만류하기, 2학년이 되었다고 신입생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후배에게 한 마디 하기를 시전하는 동안 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말 안 듣는 후배", "무서운 선배"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무렴 뭐 어떠랴, 누군가는 흐르는 녹물을 멈춰야만 하는 것이 단체 생활 아니겠는가. 덕분에 나는 내 소신껏 할 말을 다하며 캠퍼스를 누빌 수 있었다.

 

맡은 건 잘해내야 직성이 풀린다

대학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김소라가 안 했으면 아무도 안 했어."라는 말이다. 동기들끼리 과제 제출일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다 결국 내가 안 했으면 그건 그냥 모두가 안 했을 거라는 뜻이니 안심하자며 나누던 이야기 속 한 마디였다. 나는 내 손에 쥐게 된 것은 무조건 남들 눈에 완벽해 보여야 했다. 팀 프로젝트를 할 때 항상 PPT 제작과 발표를 맡곤 했는데 폰트 외곽이 깨져 보이는 게 싫어서 그라데이션 100%를 일일이 줘가며 매끄럽게 할 정도로 완벽주의 성향이 강했다. 친구들에게 이런 걸 강요할 수 없으니 내가 맡는 것이 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성적까지 완벽했는가? 멋쩍게도 그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성향 덕분에 교수님과 동기들의 무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였느냐 하면 국시 모의고사 성적이 잘 안 나와도 교수님은 "소라야, 너 완벽하게 해내려고 해서 그래. 너 또 한 과목만 죽어라 보고 있지?" 하며 쓴소리 한 번 안 하실 정도였다. 물론 모의고사 성적은 잘 안 나왔어도 국가고시는 합격했다. 

 

 

 

챕터 3. 니들이 뭔데, 날 울려

핵심 단어
사회 초년생 | 상처

영향
- 내가 성장할 수 없는 곳에서 버틸 이유는 없다.
- 상처받지 않기 위해 조금은 방어적이어도 된다.

눈물 마를 날이 없는 신입이 되다

드디어 국가고시를 마치고 치과위생사가 된 나. 취업하면 기쁜 날들만 있을 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하루하루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날들이 계속 됐다. 졸업도 하기 전에 출근해서 한 번도 껴본 적 없던 무전기를 귀에 착용하고 하루 종일 긴장에 벌벌 떨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신입은 스툴에 앉을 수 없다는 말에 집에 가면 퉁퉁 부은 다리를 벽에 올려 놓고 잠들기 일쑤였다. 하루는 어시스트가 서툴다며 "너 사람 언제 만드냐." 는 말로 환자 앞에서 망신을 주는 의사의 한 마디에 소독실 이모 품에 안겨 엉엉 울었고, 하루는 퇴근하고 요가를 다닌다는 죄로 "너 아직 덜 피곤하구나?" 하는 핀잔을 듣고 소심하게 "저 어제 코피도 흘렸어요."했다가 "니가 뭐 했다고 코피를 흘려."라는 대답에 본전도 못 찾았다. 시린지에 앰플을 거꾸로 껴놓고는 신입인 내가 한 양 모르는 척하는 선배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결국은 내가 포기했다. 이런 곳에서는 성장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나는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무장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출근하게 된 치과에서는 아침에 인사를 하면 곧바로 내 담당 체어에 가 묵묵히 청소만 했다. 선배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사근사근 애쓰는 신입이 아니라, 일만 열심히 배우는 신입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날은 쭈뼛거리며 앉아있는 실습생의 모습이 마치 나 같아서 "힘들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하고 오지랖을 부리기도 했다. 정작 상처를 준 건 이들이 아니었음에도 스스로 가시를 세운 셈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뒤 친해진 동료가 말했다. "언니, 난 언니가 멋지다고 생각했어. 텃세 당하면서도 마이웨이 했잖아." 나는 당황했다. "내가 텃세를 당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 시기에 모두가 알지만 나만 모르는 텃세를 당한 것이다. 아, 내 가시가 나를 살렸구나. 이왕이면 사근사근 잘 어울리며 일도 잘하는 신입이면 좋겠지만 온 세상이 나를 억까할 때는, 나 자신을 먼저 지키자!

 

이야기에 포함되지 않은 뿌듯했던 순간들

 

챕터 4. 모든 것은 나로부터

키워드
영상 번역가 | 워커 홀릭 

영향
- 해내고자 하면 된다.
- 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 능동적이고 주도적일 수 있을 때 행복한 사람!
- 힘든 상황에서도 내 자부심만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 내가 일에 진심인 것과 별개로, 주변과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우물 밖을 경험한 개구리가 되다

대학 때는 꼴도 보기 싫던 영어에 어느 순간 빠져버렸다. 매일매일 퇴근 후에 영어 공부를 했고, 평상시에 눈여겨보던 통번역 전공생의 블로그에 과외 학생을 구하는 글이 올라왔을 때는 잽싸게 댓글을 달아 과외를 받았다. 한국어가 제공되지 않는 컨텐츠도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넓어져만 갔다. 이렇게 내가 영어를 사랑하는데, 이걸로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여러 고민 끝에 영상 번역 아카데미에 수강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토요일 퇴근 후에 서울로 가서 입문반 강의를 듣다가, 실전반을 들을 즈음에는 직장을 그만뒀다. 마지막 스터디 평가 때, 졸업생 중 실전에 투입할 세 명의 명단이 올랐는데 운이 좋게도 내가 그중 한 명이 되었다. 그렇지만 총 6명으로 시작한 팀 번역이 다음 작품에서는 절반이 되니 조금은 초조하고 겁이 났다. 영상 번역을 하다 느낀 것은 언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번역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영어와 한국어 모두 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배경의 문화를 알아야 그들만의 언어유희를 살려낼 수 있다. 슬슬 다른 번역가들과의 차이를 느낄 때쯤, 스웨덴 드라마 번역 의뢰가 들어왔고 나는 그 간극을 채우지 못하고 다음 작품 의뢰를 받지 못하게 됐다. 그래도 나의 Comfort zone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봤다는 사실이 너무 짜릿하고, 행복했다. 해내고자 하면 될지어다!

 

내 번역이 티비에 나오다니!

 

일에 진심인 사람은 침묵할 수 없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치과로 돌아왔다. 어느새 나는 저년 차 시절, 늘지 않는 실력에 눈치 보던 때를 지나 안정적으로 제 몫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실력을 갖춰가면서부터 내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누가 못 쉬게 한 것 마냥 일을 찾아 헤매고, 부족하다고 느낀 게 있으면 바로 선배에게 배우며 채워나갔다. 덕분에 4년 차로 막내였던 나는 12년 차, 8년 차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사내 임시치아 깎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것뿐이랴, 환자를 너무 열심히 봐서 "김소라가 또(진료 봐)?"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하고, 외국인 환자를 영어로 응대하다가 소문이 나 외국인 환자 담당이 되기도 했다. 일이 힘들다고 툴툴댔지만 사실은 항상 자부심을 느꼈고 뿌듯했다. 하지만 내가 그저 묵묵히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고, 후배들에게는 책임지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관리자급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구성원의 탓을 하거나 일을 떠넘기려고 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그 과정 중에 누군가에게는 비호감을 사고, 누군가에게는 조용히 응원을 받기도 했다. 그때 내 나름의 노력을 나 자신부터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래도 일을 사랑하는 나는 바뀌지 않을 것 같으니, 중간 지점을 잘 찾아봐야겠다.

 

 

 

번외 1. 그러니까 나란 사람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어쩌다 개발자를 하게 됐어요?" 

 

내게는 수없이 고민한 주제이지만, 정작 문장을 뱉어 답하기엔 너무 복잡해 어려운 질문이다.

 

조금은 추상적일 수 있지만 위의 챕터들을 보면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기회를 만들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에 주도적으로 행복을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나는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 가고 싶었다. 슬프게도 한국에서는 치과위생사의 업무 범위가 적고, 의사의 관리-감독 없이는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드시 상위에는 의사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의사가, 그러니까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장에 한계가 없는 동시에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넘쳐나는 직업군에 소속되고 싶었다.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비영리 부트 캠프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우겠다는 원대한 꿈에 다다르지 못하고 국내에서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렇게 원하던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더 나은 성장을 위해 다양한 스터디도 꾸준히 하고 학습하면서 F-lab을 통해 내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멘토님도 만나게 됐다. 또, 글또를 통해서는 함께 성장하는 커뮤니티가 주는 순기능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글또 8기 준비위 활동 사진 & 베타 리딩에 참여한 <요즘 개발자>에 남긴 추천사

 

 

가끔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성장 방향성을 고민하며 골머리를 앓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주도적이다.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어떻게 하면 나를 더 나은 환경에 데려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진심을 다하고 있다.

 

 

번외 2. 실험할 자유

아래 구절은 유튜브 편집 영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유튜브에 원하는 클립들만을 넣어 편집한 영상을 올리다 보니, 결국 나중에 남은 기억은 영상에 나온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사건도 어떻게 이야기하고 기억할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그 이야기를 난관에 부딪혀 무너지는 이야기가 될 수도, 무너졌지만 다시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언제든 재편집할 수 있는 하나의 실험일 뿐이라는 것이다.

<프리워커스(일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모빌스그룹

 

내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를 알았으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길만 남았다. 글또가 끝나기 전에 더 많은 기회들을 만들고 조언을 얻으며 남은 도전들도 잘 기록할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이 점들도 언젠가는 미래의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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